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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음악의 제목은 ‘백야’, 즉 대낮처럼 환한 밤이었다. 이 곡을 설명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은 임윤찬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다. “이걸 연주하기 위해서는 환한 밤의 풍경을 상상하나요?” 단순하고 평범한 궁금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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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차이콥스키 '사계'를 연주한 임윤찬. 사진 목프로덕션


임윤찬은 깊게 생각하는 특유의 표정을 짓더니 건반에 손을 얹었다. “상상도 하지만요, 그런 상상을 피아노로 만들어내는 건 또 다른 얘기라서요.” 그는 첫 부분을 사뿐히 연주하기 시작 은행 대출 서류 했다. “여길 보면 음악이 이렇게 단순할 수가 없고 듣기엔 깨끗하죠.” 평범한 사람들이 ‘백야’라는 표제의 이 악보를 보고서 할 생각이다.
이 정도 해석으로 성에 찰 리가 없다. 그에게는 독특한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서 박자가 없다고 상상해요. 박자가 그냥 없는 거예요.” 8분의 9박자, 즉 8분음표(♪)가 한 마디에 9개 부천오토맥스 들어가는 악보다. 9개를 세 개씩 묶어 세 덩어리로 연주하면 깔끔한 박자가 된다. 하지만 임윤찬은 그런 ‘직선’을 일부러 피한다.
“페달을 좀 흥미롭게 쓸 수 있겠죠. 똑 떨어지는 정박(正拍)을 피하면서 신비로운 물감을 칠하는 듯 연주하는 거예요. 진짜 자연의 색채와 비슷하도록요.”
지난해 5월 JTBC의 토크쇼 ‘ 맞벌이자녀교육비 고전적하루’에서 임윤찬이 차이콥스키의 ‘백야’를 설명했던 장면의 뒷이야기다. 1년이 조금 넘은 이달 22일, ‘백야’를 포함해 차이콥스키의 열두 달 작품을 담은 ‘사계’의 임윤찬 음반이 나왔다. ‘백야’는 그중 5월의 표제다.
발매된 음반에는 이 대화를 훌쩍 뛰어넘은 상상의 세계가 들어 있었다. 예를 들어 ‘백야’ 안에는 백야에 대한 상 신한마이카 신차 상이 별로 없었다. 대신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고통과 노래가 흘러나왔고, 신비로운 색깔의 세상에서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가 있었다. 임윤찬의 음악은 정해진 표제를 개의치 않고 흘러넘쳤다.
많은 피아니스트가 이 곡에서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린다. ‘난로 옆에서’(1월), ‘눈송이’(4월), ‘가을 노래’(10월), ‘크리스마스’(12월) 같은 제목이 붙은 작품이니, 그럴 만하다. 그동안 청중은 누구의 풍경화가 더 아름다운지에 관심이 있었다. 임윤찬은 작품의 장르를 아예 바꿨다. 풍경화 대신 치정극 혹은 죽음의 비극으로.
예를 들어 3월. ‘종달새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임윤찬의 ‘사계’ 음반 재생을 시작하면 이 3월에서 한 번 걸릴 것이다. 무심히 듣기에는 지나치게 짙은 슬픔 때문이다. 여러 피아니스트 버전으로 3월을 들어왔던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다. 임윤찬의 연주가 더 느리거나 감정을 과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임윤찬의 ‘종달새의 노래’는 1999년 나온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연주보다 훨씬 빠르다.
3월 ‘종달새의 노래’는 차이콥스키가 검은 건반을 잔뜩 넣은 단조로 복잡하게 만든 악보다. 따라서 종달새의 기쁜 노래를 상상할 피아니스트는 없다. 하지만 보통 해석이 ‘쓸쓸함’ 정도라면 임윤찬의 종달새는 목이 막혀 소리가 쉬는 지경으로 처연하다.
임윤찬은 특유의 대담함으로 음표의 시간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정박’에 나오지 않는 음표가 여럿 있는데, 종달새의 노래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절묘한 지점들이다. 임윤찬의 종달새는 노래를 편하게 부르지 못한다. 아래와 같은 부분이다.
????1분 50초부터 끝까지







임윤찬이 직접 써넣은 음반 해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종달새는) 목소리도 안 나오는 상황에서 가슴이 찢어지게 울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임윤찬은 12곡 모두에 독특하고 극적인 상상을 넣었는데, 장면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2월 ‘카니발’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맥주를 마시고 비틀댄다”고까지 적을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드물다. 7월에서 ‘기분 좋은 농부’까지는 떠올릴 수 있어도 “잘 익은 복숭아가 보인다”고 묘사할 피아니스트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10월 ‘가을의 노래’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떠올렸다고 했다.
상상은 제목을 과감히 벗어난다. ‘추수’라는 제목이 붙은 8월에 대해 임윤찬은 ‘운명의 여인을 만났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는 남성’을 떠올렸다고 했다. 많은 피아니스트가 12월에서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헤아릴 때 임윤찬은 ‘사랑하는 여인과 도저히 함께할 수 없음을 알고 미련 없이 건네는 작별 인사’를 들려준다.
미국 NPR의 톰 휴이징어는 리뷰에서 “‘사계’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꾼 음반”이라고 했다. 차이콥스키의 작품 중 ‘사계’는 그다지 심각한 음악이 아니었다. 음악 잡지의 의뢰로 다달이 써낸 숙제 같은 작품이었고, 각 달의 표제 또한 편집자가 붙이고 차이콥스키는 수락한 정도였다. 그간 피아니스트들에게 이 작품은 각각 따로 연주하는 앙코르쯤으로 취급됐다. 또 차이콥스키가 겪었을 러시아의 각 계절을 떠올리는 정도의 상상력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임윤찬은 한 부분, 한 음표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모든 부분에 표정을 불어넣었다. 예를 들어 5월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바치는 꽃 한 송이’라는 구체적인 상상을 적었다. 아마도 다음 부분에 그 꽃이 표현됐을 것이다. 보통은 다음 부분으로 가기 위해 살짝 지나가는 작은 연결구인데, 임윤찬은 선명한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 넣는다.
????2분 20초에서 2분 31초까지







바다에 투신하는 여성(6월), 버림받아 죽어가는 여성(10월) 같은 상상의 연주를 듣다 보면 ‘너무 심각한 것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듬을 휘감듯 잡아채는 유머(4월), 왈츠의 리듬을 중간에 멈춰버리는 재치(12월) 같은 장난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차이콥스키가 모든 곡의 주요 골자로 삼은 A-B-A 구조, 즉 중간에 B라는 요소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형식을 임윤찬은 굉장히 도드라지게 표현한다(특히 11월). A와 B의 이질성을 잘 봉합하고 화해시키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노래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방식을 피아니스트가 즐기는데, 듣는 사람이 지루할 수는 없다. 12곡을 이어서 들을 때 시간이 유난히 빠르게 지나갔다면, 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흐릿한 풍경화 대신 등장한 반전의 스릴러다.
예상 불가능했던 해석이다. 차이콥스키 ‘사계’의 명반으로 꼽혔던 미하일 플레트네프(에라토)의 연주만큼 자신의 생각에 자신감이 있지만 임윤찬의 새로움은 더 선명하다. 이 곡에 비교적 신사적인 접근을 한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는 완전히 다른 곡을 연주하는 듯하고, 지난해 ‘사계’ 녹음을 발매하고 호평을 받은 브루스 리우(1997년생)에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민첩하다. 순수한 해석이 취향인 사람에게는 낯설 수도 있다.
임윤찬은 지난해 6월 한국에서 차이콥스키의 ‘사계’를 연주했다. 원래는 쇼팽의 연습곡 27곡 전곡을 연주하기로 계획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연주 한 달 전 곡목을 바꿔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과 함께 ‘사계’를 배치했다. 하지만 임윤찬의 이번 앨범 해석은 당시의 무대 연주와도 또 다르다.
임윤찬의 실연은 놀랍지만, 음반은 충격적이다. 그가 내놓은 쇼팽 연습곡 음반이 세계에서 각종 상을 휩쓴 비결이다. 올해 초에 파격적으로 해석해 한국ㆍ유럽ㆍ북미 청중을 놀라움에 빠뜨린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또한 음반으로 나온다면 또 다른 경지의 충격을 던질 것이다. 그 주제와 30개의 변주 하나하나에 아무도 상상 못 했던 드라마가 또 담겨 있을 것이므로.
■ 제목 너머에 있는 임윤찬의 세계
「 임윤찬은 음반에 담긴 설명 책자에서 “‘사계’는 인생의 마지막 1년을 담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각 달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다음은 차이콥스키 ‘사계’의 원래 제목과 임윤찬의 상상을 요약한 것이다.



이달 22일 발매된 임윤찬의 신보 '사계' 표지.


????1월 난로 옆에서 “꺼져가는 난로 불 옆에서 추억에 빠져 흐느끼다가 현재로 돌아온다”
????2월 카니발 “놀리고 춤추고 비틀대는 캐릭터들. 슬라브 무곡과 어린아이의 놀이, 트로이카의 마술. 마지막에 사라지는 캐릭터들”
????3월 종달새의 노래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종달새들의 노래”
????4월 눈송이 “하모니카 반주 위의 노래. 새로운 친구가 되려다 거절 당하고 다시 친구가 된다”
????5월 백야 “가장 순수한 사람이 신기한 물감으로 세상을 칠하고, 남자가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6월 뱃노래 “한 여자가 스스로 죽기 위해 바다에 서서 별들을 바라본다. 천사가 나타나지만 이내 사라지고, 여성은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7월 수확의 노래 “사이좋게 일하던 농부들의 갑작스러운 싸움. 자연이 폭풍우로 벌을 주고 나면 다시 즐거운 인생을 시작한다”
????8월 추수 “쫓기는 인생. 계속해서 누군가를 피해 다니는 남성이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지만 결국 다시 떠나 죽음에 이른다”
????9월 사냥 “당당한 금빛의 아이가 어느 순간 예의 없는 아이로 변하지만 잘 타일러져 어른으로 당당해진다”
????10월 가을의 노래 “과거를 그리워 하는 마음. 전 애인에게 찾아가 보지만 다시 버림받고 서서히 숨을 거둔다”
????11월 트로이카 “가슴 속의 불안함을 잠재우려는 노력. 트로이카는 떠나갔고 그저 바라만 본다”
????12월 크리스마스 “마지막 순간에 미련 없이 작별 인사를 하며 사계를 끝낸다”
※임윤찬의 차이콥스키 ‘사계’ 음반(데카) 내의 책자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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