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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당시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지휘했던 김선태(오른쪽 첫 번째) 전 감독이 중국 선수들에게 소리치며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빅토르 안 코치. 뉴시스


동계올림픽 최고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이 중요한 결전을 불과 5개월여 앞두고 극심한 잡음을 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내년 2월에 펼쳐지는 2026 밀라노· 제2금융권 대출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까지 임기가 보장된 윤재명 감독을 선수 관리 소홀 등의 석연치 않은 이유로 내치고 김선태 연맹 이사 겸 성남시청 감독을 임시 총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술렁였다.
문제는 윤 감독과 같은 이유인 선수 관리 소홀로 1년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던 김 감독의 재선임이었다. 김 감독은 평창 올림픽 금메달 3개, 2022 베이징 올 호주취업지원 림픽 금메달 2개(중국)로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논란이 많았던 지도자다. 평창 올림픽 당시엔 심석희 폭행 사건을 허위 보고했고, 중국 대표팀을 이끌 땐 노골적인 편파 판정에 침묵했다.
빙상계와 정치권이 연맹의 무리한 결정에 문제 제기를 하자, 연맹은 김 감독을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퇴촌 조치하면서 윤 감독의 복귀를 의결했다. 그렇게 밀라노 예금담보대출이자계산 올림픽을 향해 출항하려고 했던 '김선태호'는 초고속으로 실격 처리됐다.

대장암 이겨내고 평창 올림픽 지휘



김선태 감독이 2018 평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민정과 포옹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신병자취급
김 감독은 1990년대 중후반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로 김동성, 채지훈 등과 함께 빙판을 누볐다. 1998년에는 나가노 올림픽 남자 계주 멤버로 발탁됐지만 대표 선발전에서 무릎을 다쳐 경기를 뛰지 못했다. 현역 은퇴 이후엔 대표팀 상비군 코치와 장비 담당 지도자, 중국 창춘시 감독, 일본 대표팀 코치 등을 역임하며 지도자 경험을 카드론 신청 쌓았다. 2014년 5월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은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무엇보다 큰 과제는 2014 소치 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던 남자 대표팀의 자존심 회복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대장암 판정으로 지휘봉을 내려놔야만 했다. 2015년 12월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를 마친 뒤 몸에 이상을 느낀 그는 병원 검진 결과, 대장에 종양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대장암을 초기에 발견해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었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2016년 4월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재도전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게 됐다.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 많은 금메달을 수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뒤따랐지만 김 감독은 성적만 볼 때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여자 대표팀은 심석희와 최민정, 남자 대표팀은 임효준과 황대헌 '쌍끌이 체제'로 금빛 레이스를 지휘했다. 그 결과 최민정과 임효준이 각각 남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여자 3,0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했다. 한국 쇼트트랙의 평창 올림픽 성적은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종합 1위였다. 직전 소치 올림픽 땐 빅토르 안(안현수)이 주축이었던 러시아에 1위를 내줬다.

올림픽 성과 퇴색시킨 심석희 폭행 피해 은폐



쇼트트랙 대표 선수들이 훈련 전 미팅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은 김선태 대표팀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쇼트트랙은 평창 올림픽을 불과 20여 일 남겨둔 시점에 대형 악재를 마주했다. 2018년 1월 16일 진천선수촌에서 심석희가 조재범 당시 대표팀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심석희를 쇼트트랙에 입문시켜 14년간 지도해왔던 스승의 폭행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폭행 피해를 입은 심석희는 바로 선수촌을 이탈했고,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이 선수촌을 격려 방문했을 때도 참석하지 않았다. 연맹은 이 사실을 알고도 숨기기에 급급했다. 문 대통령 방문으로 쇼트트랙 대표팀에 이목이 집중됐는데, 심석희가 보이지 않자 연맹이 내놓은 답은 '감기 몸살'이 이유였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지도자들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심석희가 몸살로 병원에 갔다고 대한체육회에 허위 보고했다.
김 감독은 총괄 사령탑으로 폭행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9년 5월 징계 의결서에 따르면, 당시 연맹은 "선수단 관리를 소홀히 하고 사건을 허위 보고해 직무를 태만하고 사회적 물의를 야기했다"고 지적하면서 김 감독에게 자격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내렸다. 해당 징계로 김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더는 지도할 수 없었다. 연맹 국가대표 선발 및 운영 규정(제10조 11항)에는 "사회적 물의로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경우 대표팀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명시됐다.

'편파 판정' 등에 업고 한국에 비수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지휘했던 김선태(오른쪽) 감독과 박토르 안(가운데) 기술코치. 뉴시스


자격 정지 징계로 오갈 곳이 없어진 김 감독은 2019년 중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중국 창춘에서 오래 지도자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김 감독에게 중국은 익숙한 환경이었다. 중국 영문 매체인 상하이데일리는 "김 감독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창춘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으로 중국과 인연을 맺었고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저우양, 량원하오, 한톈위 등 6명의 중국 국가대표 선수를 지도했다"며 "중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김 감독은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 선수들과 친분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의 신임을 얻은 김 감독은 중국 대표팀 기술코치로 합류한 빅토르 안과 함께 베이징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중국 쇼트트랙은 과거부터 한국의 공분을 많이 샀다. 노골적으로 '나쁜 손'을 써 한국의 금메달을 앗아간 적이 수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은 특히 중국에서 열려 어느 대회보다 홈 텃세와 편파 판정에 대한 우려가 컸다.
걱정했던 대로 베이징 올림픽은 '눈 뜨고 코베이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편파 판정이 심했다. 쇼트트랙 혼성 2,000ｍ 계주에서 중국은 준결선에서 3위로 탈락권에 있었지만 먼저 들어온 미국에 페널티 판정을 내렸다. 심판 판정을 등에 업고 결선에 오른 중국은 이 종목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쇼트트랙은 남자 1,000ｍ에서 황대헌, 이준서가 이해하기 힘든 페널티 판정을 받아 탈락하는 등 희생양이 됐다.
혼성 계주에서 중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던 김 감독은 남자 1,000ｍ에서 런쯔웨이의 우승이 확정된 뒤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김 감독에게는 최고의 순간이 됐을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공분을 사는 장면이었다. 당시 김 감독은 중국의 편파 판정 논란을 의식한 듯 한국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신 대회가 끝나고 나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그는 "판정은 심판이 하는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국내 실업팀 복귀 성공...태극마크는 실패



신상진(가운데) 성남시장이 시청 소속 쇼트트랙 선수단에 포상금을 지급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휘민, 최민정, 신 시장, 김길리, 김건희, 김선태 코치. 성남시 제공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중국에 안긴 김 감독은 올림픽 후 계약 종료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 감독이 귀국 후 문을 두드린 곳은 성남시청 빙상팀이다. 성남시는 2023년 1월 공석이던 빙상팀 코치를 모집했고, 김 감독은 지원서를 냈다. 아울러 빅토르 안도 지원했다.
총 7명이 지원한 가운데 김 감독과 빅토르 안이 면접을 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의 이력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 논란 속에 쇼트트랙 대표팀 간판 최민정, 김길리, 이준서, 김건희 등 성남시청 빙상팀 소속 선수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원자 중 경력이 우수하고 역량이 뛰어나며 소통이 가능한 코치님이 와야 한다"고 호소문을 올리기도 했지만 성남시는 "공모 결과 적격자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해 4월 두 번째 코치 채용 공고에 재차 지원한 김 감독은 결국 성남시청 빙상팀 코치로 선임됐다. 이번엔 총 4명이 지원했고, 김 감독의 발탁에는 최민정이 김 감독과 재회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 빙상계로 돌아온 김 감독은 지난 3월 이수경 빙상연맹 신임 회장 체제 집행부에서 이사진에 합류했다. 점점 보폭을 넓힌 김 감독은 지난달 대표팀 임시 총감독에 발탁됐다. 연맹은 "김 감독이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아 경기력향상위원회 회의를 통해 최종 후보자로 선정됐고, 이사회는 긴급 파견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셌다. 김 감독의 선임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징계를 받은 지도자로 앞서 언급된 국가대표 선발 및 운영 규정과 배치된다.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은 "쇼트트랙 지도자 선임 방식과 보직 변경에 여러 의문점이 존재한다"며 "관리 소홀을 이유로 기존 지도자를 몰아내고, 과거 관리 소홀로 중징계받은 감독을 선임하는 황당한 결정을 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무리한 사령탑 교체 시도는 과거 파벌 논란을 일으켰던 빙상계 대부가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연맹이 김 감독 퇴촌, 윤 감독 재선임을 결정하며 사령탑 선임 문제는 종결됐으나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납득하기 어려운 연맹의 '헛발질'에 한국 쇼트트랙은 혼란을 겪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